제 705 호 자하포토, ‘서울의 봄’ 전시회 개최
자하포토, ‘서울의 봄’ 전시회 개최 서울캠퍼스 미백관 지하 1층에서 중앙동아리 ‘자하포토’가 전시회를 개최했다. ‘자하포토’는 서울캠퍼스 내 중앙동아리로, 카메라나 사진 촬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활동한다. ▲전시회 현장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5월 18일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5월 19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양일간 열렸던 이번 전시회는 ‘서울의 봄’을 주제로 부원들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행사였다. 이날 전시회는 미백관에 찾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복도를 중심으로 사진과 설명을 개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 전시회 입구에 놓여있던 전시회 설명서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길었던 코로나 펜데믹을 지나 ‘자하포토’가 여는 첫 대면 전시회였음에도, 양일간 열린 행사는 많은 학우가 찾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목요일 전시회를 보러 온 한 학우는 ‘색감이 좋아서 저절로 눈길이 간다.’라며 감상을 표하기도 했다. 비록 ‘자하포토’의 대면 전시는 짧게 끝났지만, ‘자하포토’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정기출사에서 찍은 사진들을 주기적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혹시 이번 전시를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은 학우나 더 많은 사진을 보고 싶은 학우라면, 인스타그램 계정 ‘smu_jahaphoto’를 들려보길 바란다. 김지현 기자
제 705 호 마음을 녹이는 힐링콘서트
마음을 녹이는 힐링콘서트 ▲ 힐링콘서트 포스터 (사진 출처: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학술정보관) 5월 24일(화), 상명대 천안캠퍼스 한누리관 앞 잔디밭에서 11시 30분부터 12시 10분까지 음악학부 재학생들이 ‘힐링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많은 학우에게 익숙한 ‘이웃집 토토로’ OST Medley, ‘벼랑 위의 포뇨’ OST ‘벚꽃엔딩(장범준)’을 포함해 총 9곡으로 구성되었다. ▲ 멋진 연주를 보여주는 음악학부 재학생들 (사진 촬영: 양시원 기자) 햇볕의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우가 콘서트를 보기 위해 공연 장소로 모여들었다. 이날 출중한 실력으로 무장한 음악학부 학생들의 연주는 더위와 학업에 지친 학우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단 40분에 그치는 공연이지만 한 곡, 한 곡 연주하는 연주자의 노력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연이었다. ▲ 연주를 보기위해 모여든 재학생들 (사진 촬영: 양시원 기자) 이날 행사는 야외에서 진행된 만큼, 햇살을 가득 머금은 꽃향기와 풀내음 그리고 천안캠퍼스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어 5월의 화사함이 돋보였다. 푸르러지는 캠퍼스 만큼, 학우들도 이번 힐링콘서트의 응원에 힘입어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양시원 수습기자
제 705 호 대한민국의 시작,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의 시작, 대한민국임시정부 6월 6일은 현충일을 맞아, 상명대학보사에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찾았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개관 지난 3월 1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했다. 위치는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79-24 (현저동 산 5-5)로 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위치이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단, 입장은 관람 종료 1시간 전에 마감된다. ▲해설을 제공하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어플 전시회 해설은 코로나 19로 잠정 중단되었지만,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어플을 통해 전시회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전시물 근처 QR코드를 찍으면, 해당 전시물의 해설을 볼 수 있어 방문 전에 해당 어플을 내려받는 것을 추천한다. 해설은 오디오로도 들을 수 있다. 다만, 다른 관람객을 방해하지 않도록 전시관 안에서는 이어폰을 사용해야 한다. 1층- 특별전시, 환국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상징 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역사의 파도’라는 작품이다. 해당 작품을 역사의 파도AR앱을 통해 보면, AR 콘텐츠를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정과 신념을 확인할 수 있다. ▲ 상징광장에 있는 작품, ‘역사의 파도’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1층 특별전시관에서는 현재 ‘환국-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를 주제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개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는 6월 2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항전의 최전선에서 자주 독립을 이루기 위해 외교·군사 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았다. 임시정부는 비록 국제적 제약 때문에 연합국 구성원으로 승인받지는 못했으나, 국민들은 환국한 임시정부를 뜨겁게 맞았다. 그리고 1948년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번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광복 이후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환국하는 임시정부 인사들의 사진, 그 당시 자료, 신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회에서는 그 당시 세워졌던 개선문을 재현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 당시 돌아오던 임시정부 인사들이 느꼈을 감회를 일부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제도와 상징들을 고스란히 계승했다는 것을 대한민국 헌법, 애국가 등을 통해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시작점이 임시정부였음을 알 수 있다. 2층-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 임시정부의 군사활동 (사진촬영: 김지현 기자) 상설전시 1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모태인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설립, 분야별 주요 활동을 소개한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우리 민족의 투쟁과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의 한성 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가 통합해 하나의 정부를 이루게 된 배경, 일제강점기 시절 국민의 정부로서 활동했던 임시정부의 모습을 1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요 전시물은 대동단결선언, 대한민국 임시헌장, 카이로 선언 등이다. 상설전시관부터는 기념 스탬프를 찍을 수 있고 다양한 영상 전시물이 있어 다채롭고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었다. 3층-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사람들 상설전시 2관은 우리나라 국회의 시초가 되는 임시의정원의 설립을 다룬다. 임시의정원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기관으로, 헌법을 개정하며 지도 체제를 정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타국에서 독립의 길을 걸어온 임시정부의 발자취에 대해 전시는 이를 연대기 순으로 제공하며, 그 당시 한민족의 해방을 염원하는 열망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영상으로 제공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의 27년>은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고 국내외 동포들과 외국인 친우까지 한민족의 독립을 염원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해준다. 4층-임시정부에서 정부로 ▲ 4층 전시물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앞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남긴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상설전시 3관에서는 이들의 정신적 가치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를 바라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비롯해 국경일과 기념일, 그리고 마지막까지 항쟁한 독립운동가들을 세 단막으로 구분하며 임시정부의 뜻을 받아들인 현재의 모습을 설명한다. 이와 동시에 각 단막은 투명하게 처리하여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유도하며 국가 통합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함께 하면 더 즐거운 행사 모음 ▲ 시화 공모전 작품들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1층 복도 벽면에 제1화 시화 공모전, ‘내가 그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해 당선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1층 특별전시관을 지나 2층으로 가기 전 해당 전시도 살펴보면 더 다채로운 관람이 될 것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큰별쌤 최태성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별별특강 SNS 이벤트’도 열리고 있다. 국가보훈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최태성 2TV 등에 개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영상 3부작을 모두 감상하고 영상 시청 인증 사진과 후기를 SNS에 올리면 된다. 단,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대한민국임시정부별별특강’을 필수 해시태그로 넣어야 한다. 또, 기념과 공식 계정에 해당 관련 게시물에 좋아요와 참여 완료 댓글을 남기면, 추첨을 통해 매달 25일 10명에게 주는 특별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징물·캐릭터 디자인 공모전도 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는 학우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홈페이지 공지를 확인해보길 바란다. 김지현 기자, 김상범 수습기자
제 705 호 [기획] 일제를 향한 용기의 단검, 조명하 의사
일제를 향한 용기의 단검, 조명하 의사 6월은 의병의 날부터 시작해 6.25전쟁, 그리고 연평해전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획을 긋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이 많았기에 ‘호국·보훈의 달’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6월 6일은 현충일로,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현충일을 기념하여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는 한 명의 독립투사, ‘조명하 의사’를 만나보려 한다. 조명하 의사의 ‘타의중 의거’ ▲ 독립운동가 조명하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https://www.aks.ac.kr/index.do) 조명하 의사는 황해도 송화군 출신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1926년에 일어났던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습격한 송학선의 의거를 보고 난 뒤, 자신의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일본을 거쳐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향하던 그는 우연히 대만을 경유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일제의 식민통치정책의 내막을 알게 되며 큰 충격을 받는다. 일본인 주인의 찻집에서 성실하게 일을 하면서도 단검술을 연마하던 그는 어느 날 당시 일왕의 장인이자 일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가 대만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때가 왔다고 판단한 그는 독이 발린 단도로 암살을 시도하고 구니노미야의 목덜미에 상처를 내는 데 성공한다. 이 때문인지, 이듬해 1월 구니노미야는 사망하게 된다. 거사 직후 체포된 조명하 의사는 모진 고문 끝에 사형선고를 받고 결국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24세의 나이에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서 조명하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되기까지는 이례적인 속도로 고작 3개월이 걸렸다. 일본이 그가 거행했던 의거가 식민지배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현재에 와서는 1920년대 일본 정부가 주장한 '본토 확대주의'의 허상을 보여준 것으로서 대만 총독부를 포함한 일본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일본에서는 그의 거사를 ‘7월 불경 사건’이라 칭하고 대서특필하며 그 파급력을 인정함과 동시에, 한국과 대만에서는 일본에 의해 1달 동안 그와 관련한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탄압을 겪는다. 언론뿐만 아니라, 그의 의거는 일본 군부와 정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었기도 했다.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잇는) 제4대 조선 총독 야마나시 한조와 제11대 대만 총독 가미야마 만노신은 각각 조선, 대만의 피식민지인 관리 소홀을 이유로 경질당하고 혹은 간접적인 압박으로 인해 사임하게 되는 사태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네 가지의 시사점을 얻는다. 첫째, 한인 애국단의 윤봉길과 의열단의 나석주와는 달리 조직의 일원이 아닌 단독거사이다. 둘째, 일본인이 거의 신처럼 모시는 왕족을 표적으로 한 거사이다. 셋째, 총이나 폭탄이 아닌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도검을 애용했다. 넷째, 대만이라는 일본 식민지배의 전략적 요충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 새롭게 발견된 타이중 의거 조명하 의사 사진 (출처: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모든 독립운동가를 위하여 그가 일구어낸 의거는 당대에도, 현재에도 굉장히 의미가 깊지만, 일반적인 대중에게는 조명받지 못한 점이 많다. 그 이유로는 친척에 대한 보복을 막기 위해 스스로의 행적을 지웠던 것, 공식적인 사료가 부족한 것 등 다양하게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들의 희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명하 의사뿐만 아니라 조명받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 모두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기억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모두 순국선열과 호국보훈의 열의를 기리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거저 받은 것이 아닌 누군가의 피와 살로 이루어졌음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긍지가 무엇인지 참으로 회고할 때임을 인식하며, 그 자세와 수많은 의인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김채연 기자, 김상범 수습기자
제 705 호 [기획] 식민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하다
식민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하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위 구절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두 부분이다.<님의 침묵>의 특징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 나라가 식민 지배를 받고 있을 당시,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며 쓰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시대, 민족적 궐기와 독립을 통한 평화를 위해 다양한 시와 소설들이 등장하였고, 참혹한 시기였던 만큼 ‘문학’이라는 분야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더욱 꽃을 피워갔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당시 식민지의 수모를 겪은 다른 국가에서 역시 당시를 표현한 수많은 예술작품이 등장했다. 식민지배 속에서 피어난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보며 그 당시의 참혹함을 같이 느껴보자. 강대국의 탐욕이 불러온 모두의 아픔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는 강대국의 탐욕이 정점에 오른 시기였다. 이 무렵 산업혁명의 결과로 생산성이 크게 증대된 대부분의 유럽 열강은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의 강대국의 유럽 내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유럽 밖의 영토 확장되어갔다. 이들은 ‘저개발 국가에 선진 문명의 축복을 준다’는 식민지 시혜론을 주장했으나, 그 배경에 깔려 있던 것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정당화하는 찰스 다윈의 ‘사회진화론’식 사고였다. 이 시기의 그림들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둘러싼 복잡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중 프랑스 화가 마네의 ‘1867년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프랑스가 낳은 식민지의 비극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마네, 1867년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이 작품의 배경은 18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7년 6월 19일 아침, 멕시코에서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막시밀리안 황제와 충복 두 명이 총살당했다. 막시밀리안이 황제로 있었던 그 당시 멕시코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옹립한 일종의 괴뢰 정권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보다 산업혁명은 늦었으나 성공적인 금융정책으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해 투자국으로 군림하고 있었으며 멕시코의 채권국이기도 했다. 멕시코 정부가 채무 이행을 못 하자 나폴레옹 3세는 그것을 빌미로 침입해 자기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웠다. 1861년 당선된 후아레스 대통령이 엄연히 있었음에도. 멕시코를 일종의 식민지로 삼기 위해 오스트리아 출신의 막시밀리안을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1세로 황제로 세운 것이다. 다만, 황제의 즉위가 이루어진 후에도 멕시코 국민은 다른 나라 출신의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 타국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우려해 타국들은 후아레스 멕시코 대통령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의 정세 변화와 상관없이 변치 않고 지원하겠다던 나폴레옹 3세가 독일과의 전쟁을 이유로 맥시코 내 프랑스 군에게 철군 명령을 내렸다. 막시밀리안은 말 그대로 끈 떨어진 연이 됐다. 그는 곧 멕시코군에 체포됐고 바로 사형되었다. 위에 그림에서 마네는 당시의 멕시코의 왕이던 막시밀리안 1세를 처형을 집행하는 멕시코 군인들의 복장을 프랑스군의 복장과 비슷하게 그려 막시밀리안을 버린 자신의 조국을 비꼬았다. 마네는 이 처형을 여러 버전으로 그렸는데, 첫 버전에는 멕시코 병사들을 멕시코의 전통 모자인 솜브레로를 쓴 모습으로 그렸으나 이후 프랑스군 스타일로 바꾸었다. 그림에 강대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에 의해 맘대로 멕시코라는 식민지의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과 강제로 새로운 왕을 받들게 되었었던, 멕시코인들의 분노와 프랑스군과 유사한 멕시코군의 형상을 통해 프랑스의 이중성을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타국처럼 한국 역시 식민지배 당시의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그중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를 감상해보자. ▲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된 이육사의 <청포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aks.ac.kr/index.do) 이육사의 시는 독립에 대한 의지와 항일 투쟁에 대한 시이다. 다만, 이육사는 시에 직설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언어적 정제를 통해 화려한 상징과 은유를 사용하며 정신적 의지를 드러내는 특징이 있었다. 그는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청포도>에서 역시 그의 의지가 드러난다. 시에 적힌 ‘청포도’는 단순히 “청포도가 그리워 청포도를 먹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이육사가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고, 시대적 측면에서 봤을 때 ‘청포도’는 ‘일제의 간섭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손님’의 의미 역시 단순히 청포도를 먹으러 오는 손님이 아닌 조국의 해방, 독립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의 영웅들에게 식민지배의 참혹함을 담아낸 작품들을 알아보며 당시의 상황과 끝없는 민족의 궐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식민지 치하에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독과 생명적 아픔을 노래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문학으로 고통을 승화시켜야만 했고 노래함으로써 식민지배 당시 사회적 악풍을 이겨내고자 했던 민족의 영웅들에게 또다시 감사와 존경의 찬사를 보낸다. 김채연 기자, 장원준 수습기자
제 704 호 태양을 향한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이 담긴 특별한 전시 , ‘L'alba’
태양을 향한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이 담긴 특별한 전시 , ‘L'alba’ ▲ ‘L'alba’ 전시포스터 상명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박사과정 학생들은 지난 4월 22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금보성아트센터’ 지하층에서 미술 전시회를 진행하였다. 이번 박사과정 전시회는 17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였으며, 대부분 중국 유학생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회의 주제인 ‘L'alba’는 이탈리아어로 ‘일출’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에서는 새벽녘의 어스름한 빛이 점차 세상을 밝게 비추는 일출의 모습처럼, 태양을 향한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이 담겨있는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 도효뢰, <관> 학생들은 이번 전시회에서 LED등, 대리석, 바다소금부터 털실, 천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일출’을 표현하였다. 다양하지만 조화로운 색감이 드러나는 유채화와 수채화, 컴퓨터 이미지가 담긴 아크릴판을 통해 색다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금보성아트센터의 금보성 관장은 “대학원 학생들의 열정을 느끼고, 그들의 작품을 믿음으로써 이번 초대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박민정 교수는 “학생들의 미래를 믿어주시고, 희망으로 가까이 갈 수 있게 응원하고 지원해주셔서 전시를 더욱 빛낼 수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학생들의 생각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국적은 다르지만 작품을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출’을 느낄 수 있고 문화적 향유가 삶의 좋은 에너지로 연결되어 관람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전시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전시가 진행된 ‘금보성아트센터’(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는 기존에도 지방, 무명작가들에게 창작활동의 기회를 많이 부여하고 여러 전시회가 진행되었던 공간이다. 이 공간은 대관료와 판매 수수료를 없이 운영되며, ‘L'alba-일출전’ 역시 무료로 진행되었다. 학보사는 해당 전시를 기획한 금보성 관장님과 조형예술학과 박민정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금보성아트센터, 금보성 관장님 Q.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이번 전시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수업의 일환으로 금보성아트센터 전시를 보러 오신 조형예술학과 박민정교수님과의 대화도중 우연하게 상명대 조형예술학과 박사과정 학생들의 열정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열정과 작품을 믿음으로써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Q. 이번 전시작품을 전시하면서 어떤점을 느끼셨나요? A. 원래 그림자체에서는 국적과 담고 있는 이야기를 알기 어렵다. 때문에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설명을 듣다보면 그저 작품을 봤을 때와의 감동이 다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한국의 미술박람회를 통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 길들여져 있는데 이번 전시 속에는 원초적인 개념에 대한 이야기, 학생이기에 실험적인 이야기도 보여주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들을 작가의 설명을 통해서 전달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이번 전시작품들이 장르도 다양하고 관객들에게 반응과 호응도 좋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꽤 좋은 작품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Q. 관장님께서 앞으로 기획하고 싶은 전시가 있으신가요? 금보성아트센터를 운영한지 11년차임에도 이번 전시 전까지는 학생전시를 해보지 않았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졸업반이나 박사과정, 한국으로 유학 온 수많은 아티스트와 교류하는 전시를 하고 싶다. -전시회 지도 교수, 박민정 교수님 Q. 이번 전시와 주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전시제목인 ‘L'alba’는 이탈리아어로 일출이다. 일출은 어둠에서 해가 뜨는 장면으로, 해가 떠서 세상을 밝히는 것처럼 그들의 역량과 실력들이 인정받고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출이라고 했다. Q. 이번 작업이 거의 중국인유학생들로 이루어진 작업인데, 그들과의 작업에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이번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은 이미 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거나 교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작업에 진지하고 열정이 있는 모습을 수업시간과 교내전시동안 봐왔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저도 같은 작가로서 작품이 깊이 있고 뜻이 있어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그들 작품에서는 대륙의 기질이 드러나는 데, 작품의 스케일이 크고 작업에 대한 밀도가 매우 높고 깊이도 있어 관람자에게 감동, 감성, 에너지 전달을 느끼게 한다. 또 이번 전시에 참여한 중국 유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따고 본국에 돌아가서 한국학생들의 예술과 전시에 대해 알리고 우리학교 학생들도 중국에서 전시와 교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이번 전시작품을 볼 때 염두해두면 좋은 점이 있을까요? A. 전시작품을 볼 때 선입견 없이 봐주시고 작품의 제목을 보고 관람자의 시선과 작가의 시선을 비교해보고 작가가 생각한 타이틀을 보며 생각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Q. 앞으로 교수님께서 전시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신가요? A. 외부에서 전시를 진행한 것은 이번 조형예술학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처음이기 때문에 전시 타이틀을 일출로 했고,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난 진취적인 타이틀을 생각해보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단체전, 개인전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제 위드코로나에서 벗어나고 일상을 회복하고 있어 코로나 이전에 이탈리아, 독일 등 외국에서 계획했던 전시를 재개하려 하고 이번 6월에는 강원도 삼척 문화예술원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윤정원 기자, 정달희 수습기자
제 704 호 음악학부, 제17회 현악합주의 밤 개최
음악학부, 제17회 현악합주의 밤 개최 ▲ 제17회 현악합주의 밤 (사진 촬영: 김지현) 음악학부에서 주최한 ‘제17회 현악합주의 밤’이 5월 13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상명아트센터 대신홀에서 열렸다. 상명대 현악 오케스트라는 상명대 음악학과 현악 전공 학생들로 이루어진 단체로 이번 공연은 원한다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정기연주회였다. 이번 연주회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2년간 공백기 끝에 열린 연주회라 더 뜻깊은 행사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이홍경 지휘자의 지휘 아래 진행된 바이올린 전공 이채연 학우와 첼로 전공 서민지 학우가 협연자로 자리해 무대를 빛냈다. 상명대 현악 오케스트라는 세인트 폴 모음곡 (St. Paulʼs Suite Op.29), 생상의 첼로 협주곡 제1번 a단조 op.33 (Cello Concerto No.1 in A minor Op.33 1st mov.),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Introduction & Rondo Capriccioso Op.28), 심플 심포니 (Simple Symphony Op.4)를 선보였다. 협연자, 이채연 학우와 만나다 상명대 학보사는 이날 협연자로 연주한 이채연 학우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채연 학우는 세 번째 곡인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Introduction & Rondo Capriccioso Op.28)’에서 협연자로 연주하여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뛰어난 연주를 보여준 협연자, 이채연 학우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음악학부 19학번 이채연입니다. Q. 이번 공연에 협연자로 참여하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학교에서 이런 좋은 기회로 연주를 참여하게 되어서 졸업하기 전에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공연이라 뜻깊었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연주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Q.연주하신 곡을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이번에 연주한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오소는 19세기 스페인 출신의 바이올린 거장, 파블로 데 사라사테를 위해 작곡, 헌정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느리면서 긴장감과 우아함이 감도는 짧은 서주 부분에 이어, 주제부와 삽입부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싱코페이션적인 리듬을 통해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론도에 스페인적인 열정이 담기고 이탈리아적인 쾌할함과 악마적인 테크닉이 혼재하는 카프리치오소가 더해지는 곡입니다. Q.보러오신 관객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A. 평일 저녁 바쁘신 와중에 먼 곳까지 발걸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가 정리되고 학교에서 하는 공식적인 첫 번째 연주인 만큼 현악 오케스트라가 준비한 좋은 연주를 보여드린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앞으로 음악학부에서 할 연주회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와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Q. 함께 연주한 단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A. 준비 기간도 짧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연습한 것 그 이상으로 좋은 연주를 관객들에게 들려준 것 같아 너무 대견했습니다. 협연자로서가 아니라 현악합주 수업을 듣는 일원으로서 굉장히 자랑스러웠습니다. 촉박한 연주 기간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모두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자신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에게 있을 많은 연주에 힘이 될 연주였기를 바랍니다. 너무 고생했습니다. 부족한 협연자를 반주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선율, 밤하늘을 물들이다 ▲ 좋은 연주를 들려준 연주자들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이날 공연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는 등 성황리에 마쳤다. 이홍경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호흡하며 공연에 열의를 다했다. ▲ 협연자 서민지 학우의 연주 (사진 촬영: 김지현 기자) 두 번째 곡인 ‘생상의 첼로 협주곡 제1번 a단조 op.33 (Cello Concerto No.1 in A minor Op.33 1st mov.)’의 협연자 서민지 학우는 낭만적인 표현과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교로 공연의 화려함을 더했다. 세 번째 곡인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Introduction & Rondo Capriccioso Op.28)’의 협연자 이채연 학우는 긴장감과 우아함이 감도는 선율과 불꽃 같은 연주로 관객의 눈과 귀 모두 사로잡았다. 함께 연주한 현악 전공 재학생들도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관객석에서도 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공연을 보러온 화공신소재학과 21학번 이소원 학우는 ‘친구들과 함께 이런 공연을 볼 수 있어 너무 즐거웠어요. 공연하신 분들 모두 멋있었습니다. 또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공연을 본 소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번 현악합주 연주회는 공연자에게는 한 걸음 더 나아갈 밑걸음으로, 관객들에게는 긴 코로나 19 상황 속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앞으로도 멋진 공연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연주자와 공연 관계자, 그리고 음악학부를 응원한다. 김지현 기자
제 704 호 상명대학교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상명대학교 박물관
상명대학교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상명대학교 박물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라고 전해지며 현재에 이르러 다양한 사례로 인용, 확대될 정도로 유명한 역사와 관련된 격언이다. 이 격언을 기반 삼아 현 학보사는 상명대학교의 역사를 되짚어보기로 했다. 항상 수업이나 휴식 등 많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하는 학교이면서도 막상 학교에 대한 자세한 내부 사정 등에는 많은 학우가 관심을 두지 못한 것 같아 개교기념호를 맞아 상명대학교 박물관을 찾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박물관을 비롯한 학교의 역사를 되짚을 수 있는 시설들이 꽤 잘 마련되어 있었고, 그중에서 우리는 스뮤하우스 기숙사와 가까이에 있는 상명대학교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2층으로 나누어진 건물인 상명대학교 박물관은, 1층은 학교역사와 기획전시실이 있는 곳이고, 2층은 동·유럽자기실이 자리해있다. 전시와 연계된 교육, 체험학습 프로그램, 교양문화강좌, 체험 행사들이 유물 전시와 함께 진행되고 있으니 관심이 있는 학우들은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물관은 월요일~금요일(10:00~17:00)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주말 및 법정공휴일, 개교기념일에는 휴관하니 방문 시 주의하길 바란다. ▲상명역사 전시실 전경 일부 (사진촬영: 곽민진기자 ) 1층 전시실에는 상명 역사 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다. 2015년 ‘상명대학교 출범 5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전시실이라는 상명역사전시실은 계당 배상명 선생에 의해 1937년 상명고등 기예학원으로 출발한 상명대학교의 역사를 여러 사진과 유물 등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략적인 전시실의 흐름을 바라보면 1965년 상명여자사범대학이 문을 열고 1983년 상명여자대학으로 대학교명이 변경된다. 이후 1985년 천안캠퍼스 개설로 이원화 캠퍼스 운영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과 1986년 상명여자대학교 인가를 거쳐 1996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상명대학교로의 변모와 남녀공학으로의 전환까지 상명대학교라는 학교의 역사 중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그 변천사를 자세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상명대학교로 오기까지의 과정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았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설립자와 이사장, 총장을 비롯하여 동문회, 총학생회, 동아리 등의 공간이 동문의 기증 자료와 함께 상설전시되어 있다. ▲기획전시실에 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방 모형(사진촬영: 윤정원기자) 1층에 있는 또 다른 전시실인 기획전시실에서는 ‘일상 함_㮭 담다’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중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각종 나무의 쓰임새와 질감을 살펴볼 수 있고, 담뱃대, 거문고 등 나무를 재료로 한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붓, 벼루, 연적 등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고 전통가구들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하나의 방으로 꾸며놓은 곳도 있어 더욱 생생한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실 한편에는 조선시대 호패를 직접 디자인해 만들어 볼 수 있는 셀프체험존도 있어 특별한 체험도 가능하다.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백자청자(사진출처: 상명대 블로그기자단 양지바른님) 2층에는 상설전시실과 기증전시실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상설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대한민국의 역사적 자취들을 느낄 수 있는 금속공예, 도자공예, 목공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고미술실 전시에 출품된 삼국시대와 고려·조선 시대 불교 유물은 개인 수집자이신 김대환 선생께서 2003년에 기증해 주신 129건 900여 점 가운데 선정된 것이다. 금속공예는 불상, 불탑, 불교 예배 의식 용구와 동경, 장신구 등이 자리 잡아 있고 도자공예는 삼국시대 토기부터 조선시대 청화백자까지 우리나라의 도토기를 시간의 흐름 순으로 전시하여 우리 도자기의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목공예는 목가구, 장신구, 떡살, 실패 등 다양한 문화재를 가구류와 공예품으로 분류되어 전시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재 전시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상명대학교 박물관의 상설전시실에서는 과거 우리 문화의 생생한 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유럽자기실의 일부 전경 (사진촬영: 윤정원기자) 앞선 상설전시실에서는 담백한 한국 자기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면 2층 기증전시실인 유럽자기실에서는 독일, 프랑스, 덴마크, 영국, 이탈리아 등 다양한 유럽 자기가 전시되어 화려한 유럽 자기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전시된 자기들은 박물관에 소장된 1500여 건 가운데 선별하여 전시된 것으로, 유럽에서 최초로 경질자기를 생산한 독일 마이센부터 영국 로열 우스터, 덴마크 로열코펜하겐, 프랑스 세브르 등 각 나라의 유서 깊은 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저마다의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그릇들과 접시, 찻잔세트이 나라별로 차례로 전시되어 있으며 일부 자기들은 유리가림막없이 전시되어 있어 더욱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다. 또한 나라별로 차례로 전시되어 있어 나라별 특징과 유럽 자기의 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평창동에 있는 상명대학교 박물관은 학교 캠퍼스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많은 학생이 잘 알지 못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학우가 이곳을 방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개교기념호에서 다루게 되었다. 학교 개교기념일을 맞이해 학교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다양한 예술품까지 전시되어 있어 더욱더 알찬 상명대학교 박물관에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윤정원기자, 곽민진 수습기자
제 703 호 우리의 미래식량, 곤충을 요리하다
먹을 양식 없이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생존하는 데 있어서 호흡과 식량은 기본적인 필수요건이다. 다른 것은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식량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생각해봐야 할 문제, 지구촌 식량 위기 홍수, 가뭄, 이상기후 등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인해 곡물 수확량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관개농업과 무리한 지하수 채굴로 물 비축량이 줄어들어 가뭄이 오면 속절없이 농업용수가 부족해지고 농사가 어려워진다. 설상가상으로 농지 감소와 더불어 선진국의 농업 연구비가 축소되면서 농업의 발전을 위한 연구도 약화하고 있다. 최근에 늘어난 육식 인구와 바이오 연료 사용량 증가도 큰 문제 중 하나이다. 가축을 키우고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에는 상당한 양의 곡물이 필요하다. 이처럼 여러 요인이 더 많은 식량, 곡물을 요구하는 데 반해 이상기후로 인해 생산량은 지속해서 줄어들면서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특히 식량의 자급자족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는 국가이다. 현재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6%이고, 식품 에너지 자급률도 50%밖에 되지 않는다. OECD 기준 우리나라는 식량 위기 우려 국가이다. 곡물이나 식량의 수입 의존도가 높을수록 식량 위기의 위험도는 높아진다. 그러나 식량은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더는 덮어놓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결이 어렵다면 어떤 전쟁보다 두려운 식량 전쟁이 될 수 있다. 이에 현재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미래 식량 전쟁에 대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식용곤충’이다. 미래 식량자원으로 선택된 작은 가축, 식용곤충 유엔이 뽑은 미래 식량 1순위는 곤충이다. 곤충은 지구 전체 생물 가운데 단일종으로는 유일하게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이며 종류도 다양하고 맛과 영양분도 가지각색이다. 식용곤충은 영양학적으로 축산물과 비교해 단백질 함유량이 비슷하거나 2~3배 높으면서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 무기질 등의 영양소도 많다. 또한, 식용곤충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축산업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2분의 1수준에 그친다. 현재 담수의 70% 비중을 차지하는 농업과 이에 100배가량의 물이 필요한 축산업에 비해 곤충은 물을 따로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물 부족 문제도 상당히 해소할 수 있다. 더불어 식용곤충은 인공 사료도 필요 없고 가축에 비해 사육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각 나라 환경에 맞게 특별한 자본이나 기술 없이도 키울 수 있는 구호 음식으로도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벼메뚜기’, ‘누에번데기’, ‘백강잠’, ‘갈색거저리(고소애,밀웜)’, ‘쌍별귀뚜라미’,‘흰점박이꽃무지유충’, ‘장수풍뎅이유충’으로 총 7종의 식용곤충이 있다. 먼저, ‘벼메뚜기’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나며 단백질과 트립신이 풍부하여 소화를 촉진해 위장기능 강화와 천식 치료에 사용된다. ‘누에번데기’는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나며,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은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1/3수준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효과적이고 당뇨 치료에 많이 사용된다. ‘백강잠’은 짭짤한 맛이 나는 식용곤충이다. ‘갈색거저리(고소애,밀웜)’는 감자튀김 맛이 나며 심혈관 질환에 효과가 있는 불포화지방산이 총 지방산 중 75% 정도로 가장 많다. 또한, 무기질과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되어 있고 기침이나 가래를 없애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다. ‘쌍별귀뚜라미’는 아몬드 맛이 나며 비타민D의 함량이 높아서 골격 건강에 유리하고, 한의학적으로 해열제나 이뇨제 등으로 활동되기도 한다. ‘흰점박이꽃무지유충’은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나며 비타민과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독소를 없애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마지막으로, ‘장수풍뎅이유충’은 고소한 맛이 나며 면역기능 증강 효과가 있어 간 관련 질환과 야뇨증 등의 질병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식용곤충으로 요리하다 우리나라 식용곤충 시장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곳은 곤충 카페 ‘이더블버그’와 곤충요리 전문점 ‘빠삐용키친’ 등을 꼽을 수 있다. 국내 최초로 곤충 과자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이더블버그(ediblebug)는 메뚜기로 만든 에너지바, 밀웜과 누에로 만든 쿠키, 밀웜으로 만든 양갱, 메뚜기와 밀웜으로 만든 한방차 등을 판매한다. ‘빠삐용키친‘은 식용곤충의 건조 및 분말화, 제면 특허 등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크로켓, 파스타, 애프터눈티 세트까지 식용곤충을 활용한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는 곤충요리 전문점이다. ▲ 곤충카페‘이더블버그’ 판매제품(출처:라메드 매거진,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3112094&memberNo=32143316) ▲ 곤충요리전문점 ‘빠삐용의키친’에서 먹을 수 있는 곤충요리들(출처:톱클래스 ,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tnu=201608100024) 이외에도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촌 식량 감소 현상이 전망되면서 세계적으로 곤충요리에 관한 연구 및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캄보디아는 귀뚜라미를 튀김 요리로 즐겨 먹으며, 태국은 구더기 회를, 일본은 말벌이나 꿀벌 유충을 볶고 지은 밥인 헤보메시를, 중국은 매미요리를 먹었다. 비록 곤충이 특유의 혐오감 문제로 대중적인 식문화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지구촌 다양한 곳에서는 충식 문화를 오래전부터 이어오고 있었다. 식량의 새로운 패러다임 식용곤충은 고단백&저지방 자원으로 다양한 아미노산, 많은 무기염류, 비타민 등을 함유하는 고영양 자원이고 일반 가축보다 암모니아를 적게 배출해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본과 낮은 기술력으로도 생산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다양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식용곤충은 제도적으로 곤충을 식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현재 인정받은 7가지 식용곤충 외에도 다양한 곤충을 식품으로 등록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곤충산업에 대한 투자도 늘어나면서 식용곤충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식량부족 문제는 아직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곤충은 건강에 좋고 친환경적인 식재료라는 장점을 열거하여도 곤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한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식문화가 우리의 밥상에 들어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 현재 식량위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지금부터 새로운 식량자원으로 떠오른 곤충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소영 기자
제 703 호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사진 촬영: 윤정원 기자) 서울캠퍼스는 종로구에 위치한 만큼 주변에 많은 문화재와 박물관이 존재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세상을 떠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삶에 위로와 울림을 전해주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우들이 자주 드나드는 부암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원래 1970년대 지대가 높은 청운아파트를 위해 수돗물을 끌어 올려 물탱크에 가둔 다음 압력을 가해 위로 솟구쳐 올라가도록 돕는 시설인 수도가압장이었다. 아파트가 낡아 철거되자 용도를 잃은 채 방치되었던 수도가압장을 당시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 ‘윤동주 시 선양회’가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시인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하숙집과 현재의 문학관이 같은 지역인 점에 착안하여 종로구가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으로 만들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조국을 염려했던 시인 윤동주 윤동주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출생으로 1936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 표시로 숭실중학을 자퇴해 용정 광명학교 중학부로 편입해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2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에 진학하였다. 1943년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2월 복역 중 건강 악화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이후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으로 정음사에서 시집이 출간되었다. <겨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으며 성인인 연희전문학교 시설에 쓴 시에는 <서시>,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별 헤는 밤> 등 자아 성찰의 면모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비를 이룬다. 무장으로 일제에 맞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고 자신을 성찰한 윤동주 시인의 마음은 윤동주 문학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윤동주의 생애를 시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제1전시실, 시인채 제1전시실은 시인의 순결한 시심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을 의미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우물은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목재 널 유구로, 유리벽에는 ‘자화상’이 적혀있어 늘 자신을 성찰하고 올곧은 자세를 유지하려했던 윤동주 시인을 떠오르게 한다. 우물의 우측에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순으로 배열한 사진 자료와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처음 전시된 시인 <오줌싸개 지도>는 1936년 초에 쓰여진 동시로, 시에 나오는 ‘오줌싸 그린 지도’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소재로 사용되어 가족이 해체될 수 밖에 없었던 냉혹한 현실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윤동주 시인이 어린시절부터 나라를 잃은 식민지 백성의 슬픔을 시에 나타낸 것을 알 수 있다. 그 옆에 광명중학교의 성적표에 함께 전시되어 있는 시 <이런날> 또한 시 속의 ‘두 돌기둥’을 통해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픈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시인이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 개명을 해야 했던 시기에 쓴 <참회록>과 대학생들에게 단발령이 내려진 시기에 쓴 <쉽게 씌워진 시>는 그 당시 시인이 느낀 감정을 유리벽 오른쪽에 써져있는 역사적 사건과 대입해 더욱 감상에 몰입할 수 있다. 전시의 막바지에는 독립운동 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판결문에 관한 전시로, 윤동주 시인은 독립이 6개월이 채 안남은 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일본 대도시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다. 전시 마지막에는 윤동주 시인이 절명한 후 유족들이 낭독한 ‘새로운 길’이 전시되어 있으며 유고 31편을 모아 발간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 중보판, 문고판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낄 수 있는 제2전시실, 열린 우물 '열린 우물'이라고 칭하는 제2전시실은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에서 자아성찰의 매개체로 나오는 우물에서 모티프를 얻어 물탱크의 상단을 개방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넓은 뜰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탱크에 담겨 있던 물의 흔적이 벽에 그대로 남아 있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열린 우물의 높고 두꺼운 벽면 위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데, 마치 우물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 속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는 시구처럼 파란 하늘과 구름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아 성찰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우물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시인의 일생과 문학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제3전시실, 닫힌 우물 열린 공간인 제2전시실과는 달리 두꺼운 철문으로 닫혀 있는 제3전시실은 '닫힌 우물'이라고 표현된다. 닫힌 우물, 제3전시실은 반 층 지하의 두꺼운 시멘트벽들로 둘러싸여 있어 다른 전시실보다 비교적 기온이 낮다. 서늘한 느낌과 물때가 남은 거친 벽면이 윤동주 시인이 눈감았던 후쿠오카 형무소를 연상시킨다. 제3전시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그의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는데, 닫힌 우물의 분위기로 인해 공간의 정서와 함께 영상에 몰입할 수 있다. <별의 시인 윤동주> 영상은 오전 10시부터 17시 30분까지 매 15분 간격으로 상영하며 마지막 영상 상영 시작은 17시 30분이다. 영상에는 윤동주 시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문학 세계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벽면의 울퉁불퉁 거친 표면과 물때 자국 위로 영상을 비추기 때문에 그때 그 분위기가 잘 전달된다. 영혼의 물길을 정비하는 우리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에 가서 윤동주 시인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와 삶의 고뇌에 대한 시를 감상할 수 있고 특히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시를 윤동주 시인의 친필원고 영인본을 볼 수 있어서 당시의 고뇌, 자신의 행적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하는 태도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시를 쓰던 노트에 시뿐만 아니라 시인이 했던 생각들을 끄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의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아 성찰의 태도를 본받는다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학업과 취업 준비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명대학교 학우들, 그리고 세상사에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영혼을 맑고 강하게 깨워 주며,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한다. 우리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에 삶이 지치고 피곤할 때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윤정원, 이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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